상처는 마음의 문제일뿐 기억 사라지도록 도와야
민감한 반응은 오히려 해 죄의식 가질 필요는 없어


[질문]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바로 신고하고 치료를 받았어야 했지만 본인도 말하기 싫어하고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보여서 그냥 덮어두고 말았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남자만 보면 거부반응을 보이고 머리카락을 뽑으며 자해를 합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도 먹는데 머리카락을 뽑는 증상은 여전합니다. 오랜 세월 습관이 돼서 겨울에는 가발을 씌우고 손을 테이프로 감아보기까지 했습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약을 늘려봤는데 부작용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이렇게 된 게 다 엄마 탓이라고 합니다.


[답변]

엄마 마음속에서부터 아이가 성추행을 당한 것이 큰 문제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성추행의 상처라는 게 밖에서 온 문제 같아 보여도 사실은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껴안으면 사랑받았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껴안으면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잖아요. 몸의 상처는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됩니다. 마음에 남아 있는 기억이 문제인데, 엄마가 먼저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닌 줄을 알고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자꾸 ‘우리 아이가 성추행 당했으니 큰일이다. 이 일을 어쩌나!’하면서 걱정하면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는 그 일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기억하게 됩니다. “그때 많이 힘들었지? 하지만 그런 건 손에 난 상처 같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거니까 괜찮아. 큰일이 아니란다.” 이렇게 얘기해주고, 아이 스스로도 ‘저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라고 기도하게 도와주세요.


머리카락 뽑는 버릇은 무의식 세계에 초조함과 불안이 일어나서 그런 같은데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아이가 머리카락 뽑는 행동을 엄마가 못 견뎌 문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아예 머리를 깎고 다녀도 되고, 가발을 쓰고 다니면 또 어때요. 안 생각을 넓게 하면 머리숱 같은 건 별 문제 아니니까 너무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병원에 가서 상담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엄마가 머리카락 뽑는 것을 문제 삼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엄마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난리 피우는 게 더 문제에요.


그리고 딸에게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습니다.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죄의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저렇게 됐다고 후회하는 마음은 수행이 아닙니다. 참회를 하라는 건 나로 인해 생긴 일이니까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래, 내가 부족해서 네가 고생을 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내라는 거지 후회하고 자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꾸 문제를 삼으면 삼을수록 상처가 더 커집니다. 가해 남성들에 대해서는 물론 사회적으로 엄격하게 제재를 가해야 하겠지만, 피해 당사자는 별일 아니라는 의식을 가져야 상처가 치유됩니다. 바깥으로는 강력하게 처벌을 하되 내적으로는 별일 아닌 줄을 깨달아야 해요. 마음에 남은 상처일 뿐이지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법(諸法)이 공(空)한 이치입니다. 제법이 공한 줄을 알아 내 몸은 누가 더럽힐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치면 피해를 입을 수가 없어요. 피해도 상처도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가해 남성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내 상처가 없어집니다. 사실 그 단계까지 가야 완전한 상처 치유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늘 화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성에 대한 거부반응이 차차 없어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불가항력적으로 나한테 닥친 성추행 사건이 제1의 화살입니다. 그 사건은 그것으로 이미 끝나버렸는데 그것을 상처로 삼아서 제2, 제3의 문제를 계속 일을 일으키면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내 운명이 돼버리고 마는 겁니다. 이런 제1의 화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변화라면, 설령 제1의 화살을 맞았더라도 제2, 제3의 화살이 맞지 않도록 하는 게 내 수행입니다. 

법륜스님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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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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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고집 받아주게 되면 죽을 때까지 끌려만 다녀

옳다고 판단한 일이라면 힘들어도 결단 단호하게




[질문]

정해진 시간 동안 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약속을 어기는 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요. 영화를 봐도 문장을 다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볼 정도로 뭔가에 빠지면 다른 것을 생각할 줄 모르는 데다 시간 개념 없고 자기 관리도 안 되는 아이가 게임에 빠져 중독될까봐 걱정입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설득해야 될까요?

[답변] 

남한테 묻지 말고 질문자가 생각할 때 안 하는 게 좋겠다 싶으면 무조건 안 시켜 줘야지 더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아이를 위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해주는 겁니다.

엄마가 깊이 생각할 때 아이가 미워서도 아니고 ‘지금 아이가 이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하면 아이가 죽는다고 그래도 안 된다고 해야 합니다. 설득을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안 되는 겁니다. 싸울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고 ‘그건 안 된다’, 이러면 됩니다. 애가 울고불고 해도 그냥 내버려 두세요. 남이야 어떻게 하든 이것이 아이한테 안 좋다는 판단이 서면 힘들어도 아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4살짜리 아이가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총을 사달라고 합니다. 엄마가 생각할 때 4살짜리가 벌써 총을 갖고 노는 것은 여러 면에서 안 되겠다고 판단해서 ‘안 돼’라고 합니다. 사달라는데 안 된다 하니까 애가 발랑 드러누워서 발을 구르고 앙앙거리면서 웁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고! 알았다, 알았다. 이놈의 자식 고집은……’ 그러면서 사줍니다. 이게 바른 엄마예요? 잘못된 엄마죠. 이것은 아이를 위해서 사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잘못된 요구를 해도 떼를 쓰면 해 준다는 식이 되면 죽을 때까지 애한테 끌려 다니는 겁니다. 

총 사달라고 하는 아이의 요구가 이해는 되지요. 그러나 아이가 미성년이니 엄마가 판단하는 겁니다. 옛날에 10살짜리 아이가 임금이 되면 임금이라 하더라도 정사를 임금이 판단합니까? 수렴청정이라고 해서 엄마가 판단하잖아요. 엄마가 한번 안 된다고 판단했으면 발 동동 구르면서 떼를 쓰더라도 ‘그래, 거기 앉아 있어라’하고 가 버리면 되는 겁니다. 엄마가 가 버리면 거기서 하루 종일 발을 구르고 있을까요, 둘러보고 엄마가 없으면 올까요?

이런 게 분명하지 않고 안 된다면서 해주고, 그러다가 또 싸우고 그러지요. 아이하고 하고 뭣 때문에 싸웁니까?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되면 되는 것이지요. 될 거 같으면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들어보고 ‘뭐 딴 집 애도 다 하니까 너도 해라’ 허락을 해주든지, ‘천하가 다 해도 너는 안 된다’고 판단되면 단호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애 문제가 아니에요. 엄마가 흔들리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무런 가치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해서 애를 낳아서 그런 식으로 키우기 때문에 세상에 자꾸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는 겁니다. 

법륜스님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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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마음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리며 이겨내는 수밖에
담배 끊는 게 수행인 것처럼 불편함 속에서 극복해야 수행

[질문]


누구와 같이 있어도 편하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그런대로 지낼 뿐이지 편한 관계가 못됩니다. 오래된 친구들과 가벼운 얘기를 하는 것도 망설여지고 항상 듣기만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또 혼자 있는 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저도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그게 제 업식이란 건 알겠는데 이제는 좀 고쳐서 살고 싶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좋지만 절이나 명상 같은 방법으로 극복할 길이 있을까요?

[답변]

꼭 고치려고 애쓸 것 없이 그냥 생긴 대로 살아도 됩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남을 해치거나 피해주는 일 없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걸 굳이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오계를 어기는 일이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니까 꼭 고쳐야 하지만 이런 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고, 같이 있고 싶으면 같이 있고, 편한 대로 하셔도 됩니다.


문제는 사람을 만나면 불편하면서도 막상 혼자 있으면 마음이 좋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이제는 사람을 만나고 밖에서 활동을 하고 싶다’ 하면서도 막상 그러려고 할 때 불편한 이유는 ‘나가고 싶다’는 그것이 마음이 아니고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내 마음은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싫어합니다. 내 카르마는 내가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생각으로는 이제 좀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보겠다고 하니까 마음과 생각이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의 카르마를 버리고 어울려 지내기를 참으로 원한다면 힘들더라도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의 불편함을 이겨내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지금 내 습관이 나타나고 있구나. 사람들과 같이 있기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원래 습관이 이렇게 나타나는구나’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불편함은 상대편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내 업식으로부터 일어납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 불편함을 지켜보면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물론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고쳐야겠다, 그렇게 바꾸는 게 내 인생을 위해 좋은 일이다’ 이런 결심이 확실히 섰다면 싫은 마음이 올라오더라도 자꾸 시도해야 합니다. 싫어도 어울려서 수다도 떨고 봉사도 하고 자기 이야기도 내어놓다 보면 조금씩 개선이 되어갑니다.


누구든지 무대에 올라 많은 대중 앞에서 말을 하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립니다. 그런 긴장과 떨림이 싫으면 무대에 올라가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 꼭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겪으면서 자꾸 연습해봐야 됩니다. 처음에는 가슴이 떨려서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앞이 새카맣게 보이지만,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잘하게 됩니다.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연습하는 것을 수행이라 하는 것입니다. 절하는 것만 수행이고 명상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내가 극복해야 될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모두 수행입니다.


남들 앞에서 얘기할 때 떨리는 마음이 일어나면 ‘아, 내가 지금 또 잘난 체를 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면 ‘아, 내 업식이 또 작동하는구나’하며 지켜보면서, 불편한 가운데에도 어울리고 어울리다 보면 불편한 마음이 점점 줄어듭니다.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문제를 극복하려면 불편함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극복해야 됩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강에 가야지 내 집 마당에서 그물 던지는 연습을 하면 뭐하겠습니까. 대학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내가 지금 공부를 해야 됩니까, 아니면 삼천 배를 해야 됩니까?’ 묻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시험을 쳐야할 학생에게는 공부하는 게 기도입니다.

사람들과 계속 어울려가면서 불편한 것을 지켜보고 불편 속에서 그 불편을 하나하나 극복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담배 끊으려는 사람에게 담배 끊는 일이 수행이듯이 앞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가면서 일어나는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그 불편함에 휘둘리지 않는 것으로 수행 삼으면 됩니다.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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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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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이제서야 보이는 것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기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도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이들의 한숨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들리는

이제서야 보이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워주겠습니다.

받은 사랑을 잘 키워서 더 풍성히 나누어 주겠습니다.


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힘차게 화이팅입니다!!

Posted by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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