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시생을 둔 부모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애가 대학에 붙으려면 첫 번째는 공부를 잘해야지요. 아이가 공부를 잘하도록 엄마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 낸다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는 엄마가 하는 게 아니고 아이가 하는 것입니다. 고3이면 나이가 열일곱에서 열아홉 사이입니다. 아이들의 사춘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전후를 사춘기라 합니다. 사춘기는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변해가는 시기입니다. 신체적으로 변화가 오면서 성인으로 성장해갑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신체가 어른이 되면 어른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래서 신체가 변하기 시작하는 열다섯 살이 되면 결혼을 시켰지요. 그러니까 몸이 어른이 될 때, 정신도 어른이라고 대우를 받는 겁니다. 때문에 옛날에는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겪는 갈등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몸은 어른이 됐는데 사회적인 조건에서는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고뇌하지요. 이런 것부터 먼저 부모가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어릴 때로 돌아가서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 마음이 어땠는지 견주어 보면서 ‘아, 맞아. 나도 그때 그런 고민이 있었어. 저만한 나이에는 그런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지.’ 이렇게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자랄 때와 지금 아이들이 자라는 이 시대는 환경이 달라졌다는 걸 명심하여 내가 살던 때의 눈으
로, 그 기준으로 아이를 보지 않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해서 아이들을 봐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그만한 나이 때 어땠느냐를 중심으로 해서 아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내 경험에 너무 사로잡혀 내 경험을 절대화시켜서 아이를 비판하는 쪽으로 가면 아이가 어긋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시대와 상황이 달라지면 성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 머릿속에 늘 떠나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은 뭘까요? 첫째 친구 문제입니다. 친구 문제에서 대략 7, 80%가 이성 친구 문제이고, 나머지는 동성 친구들과의 문제입니다. 둘째는 가족문제인데, 이 중에서도 부부갈등입니다. 엄마, 아빠가 갈등을 일으키면 그 때문에 아이들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의 정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과외선생에 학원비만 대주고 밥이나 해 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참 잘못된 생각이지요. 그런 상황에서는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 이 시기 아이들은 심리가 늘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안절부절 못 하는데 이것은 아이들의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공부는 뜻대로 안 되고 날짜는 하루하루 가니 초조하지요. 초조하면 열흘에 할 수 있는 일을 열흘 다 불안 초조 속에서 보내버리게 됩니다. 부모들은 그 마음을 이해해 줘야 합니다. 심리가 불안하면 ‘이것만 끝나면 다른 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일어나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지금 해야 할 공부 생각보다는 끝난 뒤에 하고 싶은 일 공상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어떻게 안정시켜 줄 것인지 이게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 다음은 습관의 문제가 있습니다. 고3이니 더 일찍 일어나야 하지요, 다들 놀러 갈 때도 고3이니 못 가지요, 텔레비전도 고3이니까 못 봅니다. 습관적으로 지금까지 당연히 해 왔던 일들을 입시생이기 때문에 못 하게 되니까, 마치 담배 피던 사람이 담배 끊으려 할 때 온갖 번뇌가 생기고 반발 심리가 생겨 자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것처럼,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이것도 아이들이 겪는 큰 문제입니다. 부모들은 먼저 아이들의 이런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들만의 세계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도 아이를 이해하겠다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법문을 듣고 다짐을 해도 사람이라는 건 늘 자기 생각으로 보기 때문에 “네가 고3인데 지금 연애하게 생겼나? TV보게 생겼나?”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내 입장에서 보니까 그런 거지요.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대로 그럴 필요가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하게 하면 몰래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얘기가 통하는 사람끼리 만나 쑥덕쑥덕 하게 되지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만났기 때문에 그 생각이 틀렸을 때 교정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딴 애도 같은 생각을 하니까 그들 사이에서 진리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반항심이 더 강해지는 겁니다. 

정서도 아주 예민해서 조그만 일에도 눈물이 나고 동정심이 일어나고, 쉽게 휩쓸립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는 길도 열리고, 깡패가 되는 길도 열리고, 갑자기 자극을 받으면 자살충동을 느낍니다. 이렇게 청소년 시기에는 럭비공이 땅에 부딪히면 어느 쪽으로 튈지 예측 불가능한 것처럼 아이들의 심리가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감을 잡기가 어렵지요. 
이성 친구 문제도 부모들은 “네가 지금 그런 거 할 때냐?” 이러지만, 그런 거 할 때가 되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신체 구조상, 주위 여건상 그런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야단보다는 이해를 기초로 해야 아이를 대할 아이디어가 생기고 설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한다 하면서도 자기 식대로 얘기하기 때문에 자식을 억압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낳아 기르면서도 아이를 설득하지 못하는 겁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집착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있습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아이가 놀고 싶다면 놀 수도 있는 거고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할 수도 있다는 열린 입장이 되어서 대화하게 되거든요. 상대를 이해하면 설득도 더 쉽습니다. 그러니까 설득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첫째, 이해하면 내가 편하고 둘째, 상대를 이해하면 설득도 쉬워지는 이치입니다. 단순히 아이에게 이해한다고 말을 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으시면 안 됩니다. 아이를 인정을 하라는 것이지, 아이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라는 건 아니지요. 아이 인생에 간섭도 하지 말고 특별히 애한테 뭘 해주려고도 하지 마세요.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아라. 그러나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지 나한테 와서 뭘 해달라고 얘기하지 마라.”
이런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아이가 대학 들어가면 등록금을 그냥 내주지 말고 차용증서를 쓴 다음에 내주세요. 그래야 아이가 고맙게 느끼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필요 없는 건 해 주면서 안 해야 할 간섭을 너무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실컷 도와주고도 인사는커녕 원망만 듣지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예요. 아내는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 이상을 남편한테 합니다.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은 것까지 해 놓고 나중에 “내가 너한테 그렇게 했는데 너는 나한테 뭘 했나?” 이렇게 말하지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그건 상대를 속박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간이나 가족 관계에서는 이러한 속박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가장 큰 과제는 ‘이해’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으니까 속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지요. 그러니까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공부라는 것은 하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니까 아이들은 부모를 위해서 공부를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자녀와 관계 설정을 좀 분명히 해야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제대로 못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과 아이 생각이 다르면 대화가 필요하고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할 때에는 아이에 대한 집착을 놔야 합니다. 아이가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 동의할 수 없으면 “그럼 네가 알아서 살아라.” 이렇게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집착을 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간섭을 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또 외면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 떨어지면 떨어져라.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이런 식으로 마음이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하루도 못 가지요. 이튿날 다시 집착하는 태도를 보이니 아이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냥 잔소리로 듣습니다. 부모가 그 말대로 실행하면 아이들은 겁을 내거나 신뢰를 하는데, 자꾸 우왕좌왕하니까 신뢰를 안 하는 거예요. 이런 불안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다 수행의 부족이고, 자기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로 인해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가중시키고 아이 공부에 도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이해하려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겠습니다.’ 하는 기도이고, 두 번째는 남편한테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편한테 잘못했다는 기도를 하라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든 ‘예’하는 태도를 가져서 집안이 화목해져야 합니다. 사업이 망했건, 남편이 좀 늦게 들어오건 공부하는 입시생을 두면서 그런 문제로 집안이 시끄러우면 안 됩니다. 남편이 새벽이 다 되어서 들어와도 아내는 “아이고, 오셨어요?” 하고 맞아들이면서 아이가 “아빠 왜 이제 왔대?” 이러면 “아빠 오늘 사업 때문에 늦게 오셨단다.” 대답하고, “왜 술 마시고 들어 왔대?” 이러면 “너도 나중에 커서 일해 봐라, 그렇게 되는 거야.” 이렇게 남편의 입장을 두둔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아빠는 좀 문제다.’ 생각했다가도 ‘별일이 아니구나.’ 여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남편에 대해서 입 꽉 다물고 무조건 참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형식적인 태도를 취해선 안 되고 수행으로 뉘우쳐야 합니다. ‘제가 부족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말이나 표정에서 이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가 감동하지요. 그래서 반드시 참회기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아이가 공부 못하는 책임을 아내한테 떠넘깁니다. “당신 도대체 뭐해? 집에서 애 공부도 안 돌보고” 그러면서 꼭 남의 자식 보듯이 큰소리치지요. 수험생이 있으면 엄마도 주위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엄마도 심리적인 압박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 엄마 마음이 편해지고 부부 사이도 좋아지기 때문에 실제로 아이한테 도움이 되지요. 이렇게 수행정진하면 아이가 대학 원서를 내게 될 때 쓸데없이 욕심을 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다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수행 정진하는 기도를 하면 아이한테도 도움이 되고, 아이를 위해서 부부간에 안 좋은 것도 ‘좋다, 좋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부부 사이도 나중에 좋아집니다. 그러니 부부 사이가 좋아진 것은 아이의 공덕이지요. 그러면 아이가 대학에 떨어져도 ‘시험에 떨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부부 좋아진 것만 해도 나는 지난 일 년 동안에 많이 얻었다.’ 이렇게 될 수 있지요. 이렇게 수행을 하면 여러 정황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하나가 안 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하나로부터 얻는 것이 많아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수행 한다는 것은 비가 내리면 비 내려서 좋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나날이 좋은날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이 하는 기복 수행은 되면 좋고 안 되면 난리가 납니다. 재앙과 복이 계속 교차되는 식의 수행입니다. 그러니까 심리가 늘 들떠있고 흥분되어 있어요. 기도할 때에는 의심이 없어야 합니다. 정진을 할 때에는 자신의 기도에 대해서 마음에서 의심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번뇌도 적게 일어나고 딱 몰두가 되는데, 기도하는 중에 마음에서 계속 의심이 일어나면 번뇌가 많아지고 힘이 안 붙습니다. 그런데 ‘우리아이 대학에 걸리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번뇌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빈다고 되나?’ 하는 생각이 한편에서 일어나고,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달리 도와줄 건 없으니 기도라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의심은 자꾸 드니까 이게 번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옛날 할머니들처럼 무조건 믿고 하면 되는데, 현대 교육을 받아 어느 정도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무의식의 세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기도하는 게 굉장히 힘이 들지요. 하는 게 힘들면 힘들수록 아이한테 압박이 가지요. ‘내가 이렇게 하는데 너는 뭐 하냐?’ 이런 생각이 일어나게 되고, 남편한테도 불만이 생깁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당신은 애가 고3인데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되겠느냐?” 이렇게 해서 기도가 도리어 화근이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니 아이가 공부할 때 여러분은 자신의 공부를 하세요. 아이는 방에서 공부하고 엄마는 옆에서 기도하고, 엄마가 기도하다 힘들면 아이도 공부하다 힘든 줄 알게 되지요. 그렇게 같이 하면, 아이가 공부하다 나와 봤을 때 엄마가 기도하고 있으면 아이가 자극을 받아 다시 공부합니다. 아이 공부시키려면 엄마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엄마도 수행하면서 공부를 해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아이와 대화가 되고 편안해지지요. 그래서 아이에게 번뇌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정진을 하면 남편이 설령 어떻게 되더라도 또 집안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엄마가 버팀목이 되어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아이를 이해하는 기도를 하세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엄마가 달래주어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하려면 법문 들어서 되는 건 아니지요? 수행을 직접 해야지요.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자꾸 하면 조금씩 됩니다. 그래서 일단 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가운데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하세요. 과거에 대한 참회기도를 할 수도 있고 현재에 대한 참회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해하고 어떤 말을 하든지 “예, 예.” 그렇게 한번 해 보세요. 잘 안 될 겁니다. 담배피던 사람이 담배 끊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것처럼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스님, 틀린 말을 하는데 어떻게 ‘예’ 합니까?” 여러분은 자꾸 이런 질문들을 하십니다. 그러나 틀리고 맞는 건 없습니다. 그냥 ‘예’ 하세요. 이 ‘예’는 내 맘에 들면 ‘예’가 되고 내 맘에 안 들면 ‘예’가 안 되지요? 그러나 제가 ‘예’ 하라는 것은 내 맘에 들 때 하라는 걸까요, 내 맘에 안 들 때 하라는 걸까요? 내 맘에 안 들 때 하라는 말입니다. 이게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무조건 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탁 놔 버려야 합니다. 평생을 못 놓더라도 올 해 일 년만은, 애 시험 끝날 때까지는 무조건 놔 버리세요. 집을 판다고 그래도 “예.” 도로 산다고 해도 “예.” 여자 하나 얻는다고 해도 “예.” 집에 안 들어온다고 해도  “예.” 귀찮아서 그러라는 게 아니고 우선 ‘그렇소이다.’하는 연습을 하시라는 겁니다. 조건을 달지 마세요. 정말 억울하다 할 때 탁 놔 버려야 수행입니다. 자기가 머리를 굴려서 ‘이 정도면 놓아도 되겠다.’ 하는 것은 공부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억울함이 극치에 달했을 때 탁 놔 버려야 ‘일체가 유심조구나.’ 하는 걸 확연히 깨치게 됩니다. 그래서 ‘백척간두 진일보’란 말을 합니다. ‘백 척의 낭떠러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라.’ 이 말은 ‘이거 아니다.’ 하는 끝 부분에서 한발 더 나아가라는 말이에요. 그래야 이 아상이 탁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면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로 기도를 쭉 해 나가고 마음을 안정 시켜서 아이와 함께 해 나가면 아이의 시험이 과제가 아니라 내 공부도 되고 십 년 받을 과보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결과가 납니다. 빈 마음에서 소원을 빌어야 힘이 있습니다. 욕심으로 하면 애만 쓰게 되고 별로 힘이 없습니다. 딱 백일 동안 먼저 비우는 수행을 하세요. 소원을 빌더라도 욕심 없는 빈 마음에서 소원을 빌어야 힘이 있는 거지요.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서 해 보세요. 가장 행복한, 가장 보람 있는 일 년이 되도록, 자기 인생을 한번 만들어 가도록 해 봅시다.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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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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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부부로 사는법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크게 네 번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요.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 

두 번째는 성인이 되었을 때, 

세 번째는 결혼할 때, 네 번째는 죽을 때입니다. 

오늘 그 네 과정 중, 결혼을 하게 되는 두 분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결혼하는 주인공들과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 몇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결혼해서 살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상대에게 사랑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니까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단지 상대를 사랑할 뿐,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사랑을 요구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욕망입니다. 

다만 내가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나는 행복할 뿐입니다. 


두 번째, 부부간에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공동체 중에 제일 작은 공동체가 가족이지요. 가족공동체에서는 손익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결혼한 뒤에 아내가 아파서 평생 누워 있게 되어도 남편은 죽을 때까지 아내를 보살펴야 하고, 남편이 다쳐 평생 일을 못하게 되어도 아내는 남편을 평생 보살펴야 합니다. 

자식이 신체장애자여도, 부모님이 앓아 누워계셔도 부모와 자식은 서로 평생 보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이해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나면 공동체의 첫 단계인 부부가 되고,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두 사람 사이에 난 자식이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이 됩니다. 

그래서 수평적으로는 부부관계가 되고 위, 아래로는 부모 자식 관계가 됩니다. 이렇게 부부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공동체 안에서는 이해관계를 떠나 내가 할 일을 마땅히 내가 할 뿐이어야 합니다. 


가족과 가족 사이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으면 바로 사회공동체가 됩니다. 

사회공동체의 가장 큰 단위는 민족이나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각 가족 단위가 이해관계를 다투고 각 집단과 지역이 이익을 다투기 때문이고 가정이 혼란스러운 것은 가족의 구성원인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이 이해관계로 다투기 때문입니다. 

인류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민족이, 국가와 국가간에 배타적 이해관계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의 민족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다른 민족, 다른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생명까지 함께 생각하면 생명공동체가 형성이 되겠지요. 

인간만 생각한다면 제일 작은 공동체가 가족공동체이고, 제일 큰 공동체가 인류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상부상조, 공리공생의 관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공리공생의 관계가 가장 두터운 게 가족공동체입니다. 

가족공동체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사회공동체, 민족공동체, 인류공동체의 화합을 꿈꾼다면,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요. 

오늘 두 분은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가족공동체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두 분이 힘을 합해서 만들어 보는 겁니다. 

이것이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습니다. 

음식을 같이 먹어도 한사람은 짜다 하고 한사람은 싱겁다고 합니다. 

부딪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함께 살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작은 사건들이에요. 

안개 속에 있으면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작은 사건들이 쌓이고 쌓이면 헤어지게 됩니다. 

어쩌다가 화를 냈다든지, 말을 가볍게 함부로 했다든지,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은 작아서 설사 마음이 상했다 하더라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말하면 마음이 좁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또 말하면 핀잔을 듣게 될 것 같아 불만이 잠재적으로 쌓이게 되지요. 이걸 유의해야 해요. 이미 서로 사랑해서 만났기 때문에 큰 일로 싸울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일은 사사건건 부딪칩니다. 

처음에는 이 작은 부딪힘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만 1, 2년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못 살겠다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큰 사건이 생기면 둘이 힘을 합쳐 해결하지만, 이렇게 작은 부딪침이 잦으면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외부에서 큰 사건이 생겨도 마음을 합하여 대처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혼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헤어질 때는 누가 봐도 헤어질 만한 이유가 되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잘 살펴보면 그 사건 때문에 헤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둘이 뜻이 맞을 때 일어나는 외부사건은 부부의 마음을 모으는 데 좋은 역할을 하지만, 둘의 마음이 틀어져 있을 때에는 외부사건은 서로가 멀어지는 데 좋은 핑계 거리가 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큰 일이 헤어지는 원인이 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미세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불행을 받지 않으려면 첫 번째, 수행을 해야 합니다. 

늘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알아차리고, 또 자기의 작은 말과 행동들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흡을 관하고 몸에 일어나는 작은 느낌을 관하면서 자기 마음속의 미세한 불만, 부주의를 다 알아차려 이 작은 스트레스들을 미연에 막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내속에 쌓인 스트레스도 내가 제어할 수 있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상대에게 주는 작은 실수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로 습관적으로 살기 때문에 상대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부부간에도 알 수가 없어요. 헤어질 정도까지 됐을 때도 상대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하지요. 

불만이 있으면 미리 이야기하면 되지, 어떻게 저렇게까지 생각이 가버렸느냐고 하지만 처음엔 작아서 얘기하기도 어렵지요. 또 상처를 준 상대방은 그게 너무 작은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아내나 남편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거나 머리를 만졌을 때라도  상대방이 탁 뿌리친다든지 “왜 이래?”라고 좀 강하게 하면 그때 순간적으로 거부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 둘 쌓이면 말은 안 해도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걸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부부가 된다고 하지만 부부가 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내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는 함부로 대하고 반면에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큰 상처를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부관계일수록 서로에게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사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결혼 초에 불쾌한 감정이 미세하게 일어날 때 유의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은 수행을 좀 안 해도 괜찮아요. 상대에게 피해주는 게 적기 때문이지요. 결혼해서 살면 우선 서로에게 민감해지고, 가까이 있으면서 주고받는 갈등이 많습니다. 

그런데다가 자식이 생기면 성숙하지 못한 부부관계 때문에 자식이 입는 피해는더 큽니다. 

여러분들 자신도 한번 돌아보세요. 어떤 일을 할 때, 일관되게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넘어지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대부분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심성이 건강한 사람이 드물지요. 심성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부모의 심리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자신을 살펴봤을 때, 공부가 덜 됐다 싶으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래도 자신을 살펴봤을 때, 자기 조절이 된다 하는 분은 결혼은 하더라도 자식은 안 낳는 게 좋습니다. 

만약 자식을 낳으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낳아야 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해지는 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부부관계가 좋고 부모의 심리상태가 안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다른 환경, 다른 습관으로 자라온 이 두 사람의 성격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요. 

서로의 성격이 잘 맞지 않는데도 서로를 사랑하고 좋아해서 결혼하게 됐으니 살다보면 소소한 실망이 많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미리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 맞춰 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참선하고 절하는 게 수행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맞춰 살아가는 것이 수행이에요. 
예를 들어 음식을 먹더라도 입맛이 서로 다르겠지요. 그러면 한사람은 음식을 그냥 먹고 한사람은 소금을 항상 놔두고 제각각 간을 맞춰서 먹는 방법도 있지만 둘이 간을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간을 맞추듯이 자꾸 같이 맞춰 가야 해요. 맞춰 가는 이것이 공부입니다. 

지금 이렇게 결혼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을 말씀드렸어요. 

첫 번째는 내가 그냥 상대를 사랑할 뿐이지 사랑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서로가 안 맞는 것을 전제로 하고 출발해서 앞으로 서로 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맞추는 길은 두 가지에요. 내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맞추는 수행방법이 있습니다. 나를 탁 내려버리고 “예. 예.” 하면서 맞추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철저하게 둘이 싸우면서 절충하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불자는 싸우면서 맞추면 안 돼요. 

우리는 수행자로서 맞춰야 하니까 상대에게 요구하지 말고 내가 맞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맞추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취향이든 취미든 생활태도든 전부 다릅니다. 한사람은  왜 청소를 자주 안 하느냐고 불만인데 다른 한사람은 청소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또 청소하라는 거냐며 불만스러워합니다. 

이렇게 늘 서로 안 맞아요.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상대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자랐구나, 저렇게 교육 받았구나,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이해해야 해요. 먼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상대를 이해하는 거예요. 인정하고 이해하고 한발 더 나아가 맞춰간다면 이 세상 어떤 사람하고도 살 수 있어요. 거기에는 궁합도 사주팔자도 다 없지요. 나를 내려놓고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면 문제는 없어요. 여러 문제가 생겨도 걱정할 게 없어요. 그렇게 잘 한번 살아보세요.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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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쉽게 상처 받아요 

 
저는 주위 사람의 사소한 말에도 상처입고, 그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도 느낌으로 짐작해서 괜히 움츠러듭니다. 자신이 없어서 그럴까요? 어떻게 받아들이면 주위 사람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요?

내가 지금 안경을 착용하고 흰 색깔의 천장을 본다고 합시다. 내 안경에 빨간 색이 들어있으면 이 천장 색깔이 어떻게 보일까요? 빨갛게 보이겠지요? 그런데 내가 만약 날 때부터 빨간색 안경을 끼고 있어서 안경을 한 번도 안 벗어봤다면 어떨까요.

내 안경이 빨개서 저 천장이 빨갛게 보이는지 천장이 빨개서 내가 빨갛게 인식하는지 구분할 수 없을 겁니다. ‘저 천장이 빨갛기 때문에 내가 빨갛게 안다’고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때 이 안경 색깔과 같은 것을 ‘업식’이라고 해요. 사람들은 각자 조금씩 다른 자기 업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바깥 사물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각각 업식이 서로 다름으로 인해 각자의 인식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상대가 문제라서 그렇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거꾸로 알고 있는 거죠.

‘내 안경 색깔 때문에 저 벽이 빨갛게 보인다’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인데, ‘저 벽이 빨갛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면 둘이 만나서 한 사람은 ‘빨갛다’하고 한 사람은 ‘파랗다’하면 밤새도록 얘기해도 서로 이해가 안 돼요.

“왜 빨간 걸 저 사람은 파랗다 할까? 눈이 잘못됐나?” 상대방도 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둘이 만나서는 “나는 너한테 그런 말 안했어.” “네가 그랬잖아.”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네가 얘기할 때 나는 그렇게 들었단 말이야.”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해도 끝이 안 나지요.

이런 건 각자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알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아!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 눈에는 파랗게 보이지만, 저 사람 눈에는 빨갛게 보이나 보다.’

나는 그렇게 말을 안 했더라도 상대가 그렇게 들었다고 하면, ‘아, 너에게는 그렇게 들렸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나는 그렇게 느꼈지만 상대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하면, 바로 그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람들이 “너 과민 반응하는 거야”하면 ‘내가 과민하게 반응 했구나’하고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상대가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라고하면 그냥 받아들이세요. “나는 네가 나한테 욕하는 것 같더라”하고 느낀 대로 말해요.

상대가 “난 욕한 게 아니야”하면 ‘어, 안 했구나. 그런데 내가 그렇게 느꼈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렇게 자꾸 받아들이면 고쳐집니다. 계속 “아니야, 네가 아까 그렇게 말 했으면서 왜 자꾸 변명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면 영원히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법륜스님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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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을 놓고 싶습니다
  
남편에 대한 집착을 놓고 싶습니다. 이 집착 때문에 힘든데 어떻게 해야 놓아 질까요? 겁나는 것은 내가 이 집착을 놓게 되면 대신 아이들한테 집착이 가지 않을까요?

‘집착’은 중생이 갖는 가장 큰 장애입니다. 집착은 의지심에서 오지요. 집착이 강한 것은 의지심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집착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괴롭고 힘듭니다. 수행은 이런 의지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집착을 놓으려면 인생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남편이 돈을 얼마나 벌어오느냐’,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느냐’, ‘집에 언제 들어오느냐’ 등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나의 희로애락을 좌우하는 데서 벗어나야 됩니다. 집착을 놓고 남편을 하나의 독립적인 사람으로 인정하면 그 집착이 자식으로 옮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집착은 그대로인 채 남편에 대한 실망으로 남편을 외면하게 되면 그 집착하는 마음은 증폭되어 자식에게로 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식에게 큰 짐이 되고 부모자식 사이에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수행정진을 해서 의지심을 버리는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남편에 대한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일찍 들어오느냐 늦게 들어오느냐’, ‘술을 마셨느냐 안 마셨느냐’, ‘건강하나 안 하나’, ‘돈을 많이 벌어오느냐 적게 벌어오느냐’, ‘나를 사랑한단 말을 해 주느냐 안 해 주느냐’ 라며 지나치게 남편에게 집착해서 요구하면 자기 삶이 늘 힘들지요.

그렇다고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거나 일찍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라는 게 아닙니다. 일찍 들어온다면 좋지요. 사랑해 준다면 좋고 맛있는 걸 사 주면 좋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형식적인 잣대에만 매달리게 되면 자기 인생도 불행하고 남편에게는 지나친 간섭을 하게 되어 피곤하게 됩니다. 결국은 서로가 불행하게 됩니다.

외로울 때,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남편 혹은 아내가 있으면 서로 의지처가 되어 좋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에만 너무 의지하면서 살면 오히려 서로가 상대방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립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결혼’이 오히려 속박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를 속박하는 것 같고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속박하는 것 같아지지요. 외출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자기가 뭘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아내는 늘 남편의 눈치를 보고 남편도 아내의 눈치를 봅니다. 그러다보니 결혼 생활에 대해서 회의적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결혼 생활 자체가 해탈의 장애가 되는 게 아니고 직장생활 자체가 해탈의 장애가 되는 게 아니고 사회생활 자체가 해탈의 장애가 되는 게 아니라, 집착이 해탈의 장애입니다. ‘결혼했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속박을 받는 게 아니고,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속박을 받는 겁니다.

그러므로 의지심을 버리고 집착을 놓아버리면 결혼,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언제 어디에서라도 걸림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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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갈등

감동하자 2015. 10. 15. 08:40



시어머니와 갈등 해결은

결혼한 지 14년 된 주부입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2년을 살다가 분가했습니다. 혼수에 불만이 많았던 시어머니는 소소한 일에도 시아버지를 통해 저를 꾸짖곤 했습니다. 남편은 부모님 뜻이라면 거역하지 못하고, 부모님 생각이 곧 자기의 생각입니다. 분가 후 몇 년은 매주 부모님을 찾았지만 4년 전부터는 표가 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최근 어머니가 병을 얻어 안쓰럽지만 여전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질문하신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얘기만 듣고 꾸짖는다고 했죠. 그러면 남편이 아내 말을 잘 듣는 것이지요? 또 아내가 해야 될 어려운 일을 남편이 대신 해 준 겁니다. 그것은 나와 관련된 문제지만 두 부부 사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또 부모님의 뜻이라면 거역하지 못할 뿐더러 부모님 생각이 곧 자신의 생각인 남편,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나’를 걸 떠나서 이 집 식구들을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가만히 보면 부부 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가 아주 좋아요. 질문하신 분의 말만 들어도 그렇지요. 지금 질문하신 분은 내 이익의 관점에서 상대를 나쁘다고 하는 거예요.

보통 시어머니 입장에서 며느리가 혼수를 조금 해 오면 언짢지요. 그렇다고 그 시어머니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보통 사람이지요. 시어머니와 관계가 나빠지는 건 언제든 있을 수 있는데, 매사에 혼수를 적게 해 왔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혼수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갈등의 모든 책임을 시어머니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 시집 올 때 적게 해 온 것을 늘 열등의식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혼수 적게 해 왔다고 저러나.’ 하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어머니하고 나 사이에 갈등이 있는데 시어머니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첫째, 질문하신 분은 약간의 피해의식,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시아버지도 나름대로 그냥 며느리를 야단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한다고 보는 것도 옳지 않아요. 셋째, 남편도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나한테 문제제기 한다고 보는 것도 올바른 것이 아니에요. 이런 식의 사고 속에는 뿌리 깊은 열등의식, 피해의식이 도사리고 있어요.

이건 질문하신 분이 참회할 일이에요. ‘남편이 부모 시키는 대로 한다’, ‘시어머니는 혼수 안 해줬다고 트집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자기 합리화거든요. 혼수가 적어 시어머니가 토라져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시아버지도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데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했으니 그건 시아버지 인격을 무시한 겁니다. 이 분은 자기 남편도 우습게 아는 거예요. 효자 남편을 마마보이 취급한 거죠. 자기 남편을 자기가 무시하고 사니까 무슨 사는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겠어요. 그러니 본인이 먼저 참회를 해야 합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얘기가 아마 귀에 안 들어올 겁니다. 그러나 엎드려서 계속 절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제 얘기가 귀에 들어오거나 마음이 당기기 시작하면 이 문제는 풀립니다. 이건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풀립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엄청난 화를 불러옵니다. 이렇게 마음이 꽁해 있으면서 만약 아이들을 키우면 아이들에게 화가 됩니다. 지금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아이들 문제로 속을 썩을 겁니다. 지금 정신 차려야 됩니다. 야단맞았다 생각하지 말고 정신 딱 차리셔서 정진을 하셔야 합니다.

법륜스님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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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밝게 하고 싶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마음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우울해짐을 느꼈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금방 밝아질 수 있습니까

마음이란 여러 가지 상을 지음으로써 다르게 나타납니다. 칠흑같이 어두웠다가 대낮같이 밝아지기도 하고, 천근같이 무거웠다가 깃털처럼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또 먹물처럼 탁해졌다가도 수정처럼 맑아지기도 하는데 이 모두가 다 마음이 짓는 바입니다. 괴로워할 때는 마음이 어둡거나 탁한 상태이고, 깨달음의 경지는 마음이 밝고 가벼운 상태입니다.

마음이 탁하다고 할 때는 주로 욕심을 부릴 때를 말합니다. 사람이 욕심을 너무 부리면 더러운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세상에 많이 물들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깨끗해졌다고 말할 때는 소탈하게 살 때입니다. 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욕심이 없고 계율을 잘 지킬 때 그 사람을 청정하다, 맑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깨끗하고 더러움은 그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있나 없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별것 아님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이 공하여 그 실체가 없는 줄 알게 되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인생에 너무 의미를 두게 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인생은 길가에서 자라는 작은 들풀 같은, 산에서 뛰노는 토끼나 다람쥐와 같은 삶입니다. 인생이란 특별한 게 아닙니다. 토끼라고 함부로 사는 것이 아니죠. 그렇다고 무게 잡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가볍게 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 자신이 만든 상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가장이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도 솔직하게 가족들에게 알려서 바뀐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데 체면이 안 선다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장도 없으면서 공연히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가서는 배회합니다. 누가 좀 뭐라 하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여겨 화를 냅니다. 이것은 인생을 너무 무겁게 생각한 탓입니다. 마음이 무겁고 가벼움은 어떤 것을 고집하는 정도에 따릅니다.

한 보살님의 친정어머니가 고생만 하고 호강도 못해보고 돌아가셨지요. 그 보살님이 너무 슬퍼 몸부림치면서 우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다했지만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거기에 다섯 살쯤 된 어린아이가 하나 와 있었는데, 갑자기 ‘뿌우우웅’ 하고 방귀를 뀌었습니다. 분위기가 무거워 웃음을 참고 있는데 다시 그 아이가 ‘뿌우우웅 뿡뿡’하고 계속 방귀를 뀌어대니까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보살님도 웃어 버렸지요.

그러다가 다시 ‘아이고 우리 엄마 죽었지. 엄마’하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그 때 ‘아, 방귀가 부처님이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온갖 수단을 다해도 그 슬픔을 달래 수 없었는데, 그 방귀소리로 천근처럼 무겁던 사람들의 마음이 일순간에 깃털처럼 가벼워지니 말입니다. 부처님이 천백억화신 한다더니 방귀로 화신한 거라 생각했지요. 보살님이 웃다가 또 우는 것은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죽었다는 그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고생했던 생각 하나하나에 사로잡혀 있어서 어둡고 무거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경계에 대한 집착 때문에 탁해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고 어두워집니다. 이 집착을 놓게 될 때 탁해진 마음이 수정처럼 맑아지고, 천근처럼 무겁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칠흑처럼 어둡던 마음이 금방 대낮처럼 밝아진다는 이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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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문제로 갈등이 심합니다


자식들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결혼한 아들 부부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티격태격합니다. 제가 타이르면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는데 좀처럼 잘 지낼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큰소리를 내며 싸울 정도로 시끄러웠겠지만 제가 불법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참고 또 참아 그냥 두고만 봅니다. 이러한 저의 행동이 아이들의 잘못을 방관하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항상 불편합니다. 스님께 여쭤 봅니다. 좋은 해결책이 있을까요?

먼저 내가 참회를 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엎드려 참회하면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이켜 봐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뿌린 씨앗의 과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진심어린 참회로 나를 돌아보며 지극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결혼할 당시처럼 잘 지내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지극하게 참회를 하셔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아들 내외가 싸우는 것을 보고도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남편하고 이렇게 싸웠구나. 그런 인연이 다시 과보가 되었구나.’ 하고 자신을 돌아보세요. ‘아, 우리 부부가 싸우면서 산 세월이 씨앗이 되어 아이들에게 심어졌구나.’ 라는 것을 확연히 알고 뉘우쳐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아들 내외처럼 싸운 적이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다시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겉으로 소리 내어 티격태격 싸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늘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 마음속으로 못마땅해 하며 불만을 가지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성격이 소심해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갈등하며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먼저 그것을 뉘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 내외를 보고 ‘잘했느니 못했느니’, ‘이랬느니 저랬느니’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는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벌써 ‘너희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지요.

‘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더니 정말 인연과보라는 것은 피할 수가 없구나. 내가 마음 밭에 불신과 갈등의 씨앗을 심었더니 결국 저렇게 싹이 트는 것이구나. 아이고, 미안합니다. 다 내 탓입니다.’ 하고 싸우는 걸 보면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참회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집니다. 아들 내외의 다툼에 끼어들어 간섭하고 억지로 화해를 시켜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들 내외도 나름대로 다 싸울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를 모른 채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여하고 참견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외면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을 보면서 나를 돌이켜 보고, 진심으로 참회할 때 좋은 해결책이 나올 것입니다. 먼저 참회하십시오.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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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한눈을 팔아요

제 남편은 제가 옆에 있어도 예쁜 여자다 싶으면 넋 놓고 쳐다보고, 따라가려고까지 합니다. 제가 보고 있어도 저러는데 내가 안 볼 때는 오죽할까 싶어 너무 밉고 속이 상합니다. 헤어지려 해도 남편은 절대 이혼만은 안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직장도 2년을 채 못 다니고 나옵니다. 35년 중에서 15년을 직장도 없이 집에 있었습니다.

아내가 안 볼 때는 안 그럴 거예요. 질투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어야 그렇게 하거든요. 어린아이를 보세요. 엄마가 봐야 울지 안 볼 때는 안 울어요.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예요. 그러니 누가 누구를 좋아하면 저걸 어떻게 도와줄까 해야지, 저걸 어떻게 하면 딱 깨 버릴까 하는 나쁜 마음을 내는 것은 불자의 마음이 아니에요. 부부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부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나쁜 마음을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35년 중에 20년은 직장 다녔다는 얘기 아니에요? 직장을 20년 다닌 것은 아주 많이 다닌 거예요. 못 다닌 15년을 보지 말고 다닌 20년을 보셔야 해요. 지금 하나만 보고 다른 것은 안보고 있는 거예요.

이 분의 얘기대로 남편이 그렇다면 남편은 어릴 때 심리적으로 불안했을 수 있어요. 즉 사랑을 못 받았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늘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 쉽게 좋아하고 또 금방 그만둡니다. 이 여자, 저 여자 좋아한다는 얘기만 있지 살림 차렸다는 이야기는 없잖아요. 어떤 사람을 좋아했다 해도 그 사람에게 차일까 싶어서, 사랑을 잃을까 두려움이 있어서, 의심이 나기 때문에 먼저 그만둡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꾸준히 좋아하는 게 아니고 자꾸 이 여자, 저 여자 관심이 옮겨가는 거예요.

어쨌든 심리적 불안으로 어디에도 만족 못 하고 떠도는 거예요. 직장에 오래 못 있고 그만두고 또 그만둡니다. 이런 건 심리적 불안 때문입니다. 만약에 아이가 이런 불안한 심리 상태이면 아이가 커서 결혼하기 전에 엄마가 정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늘이 무너져도 태평스러운 태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심리적으로 치유된 다음 결혼을 하면 이런 문제가 안 생기지요.

만약 이렇게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아내가 진실하게 사랑을 주면 괜찮습니다. 즉 남편의 그런 사정을 알아서 부모가 자식 대하듯 불쌍히 생각하고 어여쁘게 여겨서 도와주면, 그래서 ‘내 아내는 반석처럼 흔들리지 않는다’고 남편이 믿게 되면 저절로 고쳐집니다.

그런데 질문만 들어 봐도 남편은 심리적 불안 때문에, 일시적 충동에 의해 왔다 갔다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남편은 왔다 갔다 할 뿐, 아내를 버릴 생각은 안 하는데, 아내는 남편을 버릴 생각을 해요. 이혼하려고 한다는 건 남편을 버린다는 것이지요.

이 질문을 하신 분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남편보다 부족하다는 뜻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의 불안감은 더 심한 거예요. 그러니 ‘내가 내 생각에 너무 빠졌구나, 남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을 부추겼구나.’ 이렇게 참회 기도하면서 잘 감싸 주세요.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을 내세요. 그렇게 해서 남편이 어떻게든 내 마음에 크게 걸리지 않게 되면 남편 마음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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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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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세요

제 첫사랑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리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외로울 때 자주 보니 정이 들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마음이 들고 저를 좋게 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아기를 유산시킨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지만 유산시킨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 미혼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아는 분의 아들이 데모를 하다 감옥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감옥에 있으니까 가슴이 너무 아파서 밥도 안 먹고, 방에 불도 안 때고 날마다 면회 가서 아들을 쳐다보고 울었어요. 또 감옥에 있는 아들은 어머니가 날마다 우시고 점점 야위어 병들어가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파서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어요.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고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중생의 사랑입니다. 중생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겁니다. 이런 경우 수행자라면, 어머니는 근심 걱정 없이 잠도 잘 자고 건강하게 살며 파출부라도 해서 돈 벌어 아들 영치금이라도 넣어주고, 불경(佛經)도 넣어주면서 “엄마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고, 아들도 “바깥에 살 때는 참선도 못 했는데, 날마다 참선하며 지내니 좋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서로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아들이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밖에서 고생하는데 너 혼자 편안하냐?”라고 불효막심하다 하고, 어머니가 그렇게 살면 “자식은 시멘트 냉방에서 떠는데 엄마는 뭐가 좋아 웃고 다니나?”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질문의 주제로 돌아와서 보면 지금의 문제는 아이를 유산 시키느냐 시키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미 유산을 시켰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 당시의 일입니다. 어떤 아이가 부처님께 찾아와서 이야기했습니다. 
  “부처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할머니 산소에 가서 꼬박 3년을 울고만 계셔서 농사도 안 짓고, 아무것도 안 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에요.” 
  부처님께서 아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고 아이의 귀에 무어라고 속삭였어요. 얼마 후 마을에 이 아이가 미쳤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마을 입구에서 아이가 풀을 가득 베어다가 죽은 소한테 자꾸 먹으라고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이 소가 죽었으니 아무 소용없다고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는 계속  소 앞에 앉아서 “소야, 먹어라.”라고만 하는 거예요.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할머니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아버지한테까지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놀라서 아이에게 와 보니 정말 아들이 죽은 소한테 풀을 먹으라고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죽은 소가 어떻게 꼴을 먹나? 미친 짓 그만두지 못해!”라고 화를 냈어요.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아버지는요?”라고 말했어요. 그 때, 아버지가 딱 깨쳤어요. 
  이것이 부처님의 방편입니다. 어리석은 행동은 나쁜 행동이 아니에요. 그러나 어리석은 행동은 나쁜 행동 이상으로 큰 괴로움을 가져오지요.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봐야 해요. 질문하신 분은 먼저, 자기체면, 자기이익 때문에 남도 아닌 자기 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었으니 자신의 눈이 어두웠던 걸 깊이 참회해야 해요.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점잖은 척, 잘난 척하지 말아야합니다. 두 번째,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돼요. 더 나아가서는 나같은 경우에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미혼모의 아이들을 돌봐준다든지, 부모가 이혼해서 키우지 못하고 버리는 아이가 있으면 데려다 키우든지, 돈을 지원한다든지, 봉사를 하게 되면 이 일을 계기로 내가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과거의 잘못이 도리어 복이 되어 내가 큰 원을 가진 보살이 되는 것이지요. 울고 후회하는 건 부모님 묘 앞에서 우는 사람하고 같은 어리석은 것이에요.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탁 깨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이 버린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서 아이를 버린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다면 이것이 유산시킨 아이의 영혼을 천도하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오히려 좋은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자는 과거의 잘못을 가지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교훈 삼아 현재와 미래의 잘못을 경계하고 어리석음을 깨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참회입니다. 

법륜스님법문중에서.......

Posted by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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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크게 네 번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요.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 두 번째는 성인이 되었을 때, 세 번째는 결혼할 때, 네 번째는 죽을 때입니다. 오늘 그 네 과정 중, 결혼을 하게 되는 두 분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결혼하는 주인공들과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 몇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결혼해서 살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상대에게 사랑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니까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단지 상대를 사랑할 뿐,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사랑을 요구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욕망입니다. 다만 내가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나는 행복할 뿐입니다. 
  두 번째, 부부간에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공동체 중에 제일 작은 공동체가 가족이지요. 가족공동체에서는 손익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결혼한 뒤에 아내가 아파서 평생 누워 있게 되어도 남편은 죽을 때까지 아내를 보살펴야 하고, 남편이 다쳐 평생 일을 못하게 되어도 아내는 남편을 평생 보살펴야 합니다. 자식이 신체장애자여도, 부모님이 앓아 누워계셔도 부모와 자식은 서로 평생 보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이해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나면 공동체의 첫 단계인 부부가 되고,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두 사람 사이에 난 자식이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이 됩니다. 그래서 수평적으로는 부부관계가 되고 위, 아래로는 부모 자식 관계가 됩니다. 이렇게 부부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공동체 안에서는 이해관계를 떠나 내가 할 일을 마땅히 내가 할 뿐이어야 합니다. 
  가족과 가족 사이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으면 바로 사회공동체가 됩니다. 사회공동체의 가장 큰 단위는 민족이나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각 가족 단위가 이해관계를 다투고 각 집단과 지역이 이익을 다투기 때문이고 가정이 혼란스러운 것은 가족의 구성원인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이 이해관계로 다투기 때문입니다. 인류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민족이, 국가와 국가간에 배타적 이해관계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의 민족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다른 민족, 다른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생명까지 함께 생각하면 생명공동체가 형성이 되겠지요. 인간만 생각한다면 제일 작은 공동체가 가족공동체이고, 제일 큰 공동체가 인류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상부상조, 공리공생의 관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공리공생의 관계가 가장 두터운 게 가족공동체입니다. 가족공동체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사회공동체, 민족공동체, 인류공동체의 화합을 꿈꾼다면,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요. 
  오늘 두 분은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가족공동체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두 분이 힘을 합해서 만들어 보는 겁니다. 이것이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습니다. 음식을 같이 먹어도 한사람은 짜다 하고 한사람은 싱겁다고 합니다. 부딪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함께 살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작은 사건들이에요. 안개 속에 있으면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작은 사건들이 쌓이고 쌓이면 헤어지게 됩니다. 어쩌다가 화를 냈다든지, 말을 가볍게 함부로 했다든지,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은 작아서 설사 마음이 상했다 하더라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말하면 마음이 좁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또 말하면 핀잔을 듣게 될 것 같아 불만이 잠재적으로 쌓이게 되지요. 이걸 유의해야 해요. 이미 서로 사랑해서 만났기 때문에 큰 일로 싸울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일은 사사건건 부딪칩니다. 처음에는 이 작은 부딪힘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만 1, 2년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못 살겠다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큰 사건이 생기면 둘이 힘을 합쳐 해결하지만, 이렇게 작은 부딪침이 잦으면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외부에서 큰 사건이 생겨도 마음을 합하여 대처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혼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헤어질 때는 누가 봐도 헤어질 만한 이유가 되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잘 살펴보면 그 사건 때문에 헤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둘이 뜻이 맞을 때 일어나는 외부사건은 부부의 마음을 모으는 데 좋은 역할을 하지만, 둘의 마음이 틀어져 있을 때에는 외부사건은 서로가 멀어지는 데 좋은 핑계 거리가 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큰 일이 헤어지는 원인이 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미세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불행을 받지 않으려면 첫 번째, 수행을 해야 합니다. 늘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알아차리고, 또 자기의 작은 말과 행동들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흡을 관하고 몸에 일어나는 작은 느낌을 관하면서 자기 마음속의 미세한 불만, 부주의를 다 알아차려 이 작은 스트레스들을 미연에 막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내속에 쌓인 스트레스도 내가 제어할 수 있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상대에게 주는 작은 실수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로 습관적으로 살기 때문에 상대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부부간에도 알 수가 없어요. 헤어질 정도까지 됐을 때도 상대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하지요. 불만이 있으면 미리 이야기하면 되지, 어떻게 저렇게까지 생각이 가버렸느냐고 하지만 처음엔 작아서 얘기하기도 어렵지요. 또 상처를 준 상대방은 그게 너무 작은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아내나 남편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거나 머리를 만졌을 때라도  상대방이 탁 뿌리친다든지 “왜 이래?”라고 좀 강하게 하면 그때 순간적으로 거부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 둘 쌓이면 말은 안 해도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걸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부부가 된다고 하지만 부부가 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내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는 함부로 대하고 반면에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큰 상처를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부관계일수록 서로에게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사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결혼 초에 불쾌한 감정이 미세하게 일어날 때 유의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은 수행을 좀 안 해도 괜찮아요. 상대에게 피해주는 게 적기 때문이지요. 결혼해서 살면 우선 서로에게 민감해지고, 가까이 있으면서 주고받는 갈등이 많습니다. 그런데다가 자식이 생기면 성숙하지 못한 부부관계 때문에 자식이 입는 피해는더 큽니다. 여러분들 자신도 한번 돌아보세요. 어떤 일을 할 때, 일관되게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넘어지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대부분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심성이 건강한 사람이 드물지요. 심성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부모의 심리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자신을 살펴봤을 때, 공부가 덜 됐다 싶으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래도 자신을 살펴봤을 때, 자기 조절이 된다 하는 분은 결혼은 하더라도 자식은 안 낳는 게 좋습니다. 만약 자식을 낳으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낳아야 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해지는 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부부관계가 좋고 부모의 심리상태가 안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다른 환경, 다른 습관으로 자라온 이 두 사람의 성격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요. 서로의 성격이 잘 맞지 않는데도 서로를 사랑하고 좋아해서 결혼하게 됐으니 살다보면 소소한 실망이 많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미리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 맞춰 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참선하고 절하는 게 수행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맞춰 살아가는 것이 수행이에요. 
  예를 들어 음식을 먹더라도 입맛이 서로 다르겠지요. 그러면 한사람은 음식을 그냥 먹고 한사람은 소금을 항상 놔두고 제각각 간을 맞춰서 먹는 방법도 있지만 둘이 간을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간을 맞추듯이 자꾸 같이 맞춰 가야 해요. 맞춰 가는 이것이 공부입니다. 

  지금 이렇게 결혼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을 말씀드렸어요. 첫 번째는 내가 그냥 상대를 사랑할 뿐이지 사랑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서로가 안 맞는 것을 전제로 하고 출발해서 앞으로 서로 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맞추는 길은 두 가지에요. 내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맞추는 수행방법이 있습니다. 나를 탁 내려버리고 “예. 예.” 하면서 맞추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철저하게 둘이 싸우면서 절충하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불자는 싸우면서 맞추면 안 돼요. 우리는 수행자로서 맞춰야 하니까 상대에게 요구하지 말고 내가 맞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맞추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취향이든 취미든 생활태도든 전부 다릅니다. 한사람은  왜 청소를 자주 안 하느냐고 불만인데 다른 한사람은 청소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또 청소하라는 거냐며 불만스러워합니다. 이렇게 늘 서로 안 맞아요.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상대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자랐구나, 저렇게 교육 받았구나,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이해해야 해요. 먼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상대를 이해하는 거예요. 인정하고 이해하고 한발 더 나아가 맞춰간다면 이 세상 어떤 사람하고도 살 수 있어요. 거기에는 궁합도 사주팔자도 다 없지요. 나를 내려놓고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면 문제는 없어요. 여러 문제가 생겨도 걱정할 게 없어요. 그렇게 잘 한번 살아보세요. 


법륜스님법문중에서........

Posted by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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